『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첫 소설 『에투알 광장』을 발표한 이래 꾸준히 주목받아온 파트릭 모디아노의 입지를 확고하게 해준 작품입니다. 모디아노의 소설들 가운데서도 국내에서 가장 널리 읽힌 대표작이기도 한데요, 기억과 망각, 정체성 탐구에 천착해온 모디아노의 주요 테마가 두루 담겨 있어 입문작으로도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탐정으로 일하기 이전의 기억을 몽땅 잃어버린 채 살아온 주인공이 흥신소가 폐업해 일을 그만둔 것을 계기로 자신의 과거를 찾는 여정에 나서면서 이 소설은 시작됩니다. 스스로를 떠도는 유령처럼 흐릿한 존재로 여기는 그는 사진 한 장과 부고訃告 기사를 단서로 바의 피아니스트, 정원사, 사진사 등 자기와 관련된 기억을 조금이라도 지닌 사람들을 만나면서 베일에 싸인 과거에 점점 다가갑니다. 마침내 자신은 1940년대 어느 집단에 소속되어 있었고, 2차대전 중에 국경을 넘다가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졌다는 그림이 완성되어가지만, 이것이 과연 자신의 과거가 맞는지는 확신할 수가 없죠.
암중모색하는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 잊힌 기억을 되살려줄 단서들을 등장시켜 퍼즐처럼 하나씩 짜 맞춰가는 이 소설은 뒤이은 내용을 궁금하게 만들며 탐정소설을 읽는 듯한 감흥을 자아냅니다. 과연 주인공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는 어떤 연유로 기억 상실자가 되고 말았는가? 읽는 내내 이런 의문들이 제 머릿속을 맴돌았고, 과연 답을 얻게 될까 싶어 조마조마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엄혹한 전쟁 와중에 심신에 타격을 받을 만한 시련을 겪었고, 그 트라우마에 맞서는 방어기제로 기억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 짐작해보았고요. 이 소설은 어쩌면 속 시원하지 않은, 열린 결말로 여운을 남기며 끝을 맺는데요, 인간의 기억은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과거를 완벽히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환기해주는 듯합니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읽다보면 주인공이 사진이나 기념품이 담긴 낡은 상자들을 입수해 그것들을 살펴보고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는 장면이 여럿 등장하는데요, 저로서는 지난봄의 일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부모님 댁이 리노베이션 공사를 하면서 무려 20년 동안 봉인되다시피 한 창고 속 짐들을 살펴보고 정리해야만 했거든요. 갖가지 상자 속에 든 사진과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어 보다보면 한동안 망각 속에 묻혀 있던 일들이 새록새록 기억나곤 했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내가 만약 주인공처럼 기억 상실자라면 이것들을 보고 나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파악했을까 상상해보기도 했네요(만화·영화 덕후에 수집광이라고 결론짓지 않았을까 싶네요. 차마 처분하지 못하고 간직하기로 한 물건들을 가져왔는데 그것들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