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전쟁으로 인해 군인들의 위상이 크게 달라집니다. 트라팔가르 해전, 워털루 전투 등 역사적인 위업을 이루고 영국을 승리로 이끈 군인들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계층이 되었습니다. 물론 앤의 아버지 월터 경은 여전히 그들을 무시하며 이렇게 말하지만요.
"그 직업이 탐탁지 않은 큰 이유가 두 가지 있다는 얘길세. 첫째는, 내세울 것 없는 집안 출신이 과분한 수훈을 세워서 아버지와 할아버지 대에는 꿈도 못 꾸었던 영예를 얻는 수단이 된다는 거지. 둘째는, 그 일이 사람의 젊음과 원기를 아주 끔찍하게 망가뜨리기 때문이네. 배를 타는 사람은 어느 누구보다 더 빨리 늙지."
그러나 세상은 이미 달라졌고, 월터 경 자신도 크로프트 제독에게 저택을 빌려주게 됩니다. 과거에 집착하고 허영심 많은 월터 경과 달리, 크로프트 제독은 '해군다운 신속함'으로 집을 접수합니다.
크로프트 제독의 처남인 웬트워스 대령 역시 해군에서 승승장구하며 두둑한 재산을 모아 돌아옵니다. 이제 탐나는 신랑감이 된 웬트워스를 차지하려고 주변의 아가씨들이 모여듭니다.
"그래요, 소피아. 바보 같은 결혼을 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어요. 열다섯에서 서른까지 어떤 여성이든 원하기만 하면 나를 차지할 수 있지요. 약간의 미모에다 미소 몇 번 지어주고, 해군에 대해 몇 마디 칭찬만 해주면 난 이미 넘어간 상태일 겁니다."
오스틴은 앤과 웬트워스의 처지가 뒤바뀐 상황을 시대 배경과 절묘하게 엮어냅니다. 게다가 그 속에서 놀라울 만큼 일관되게 작동하는 결혼 시장의 경제 논리를 깊은 통찰력으로 짚어내기까지 해요.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난 제인 오스틴에게는 해군에 입대한 형제가 둘이나 있었습니다. 특히 해군 원수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는 오빠 프랭크는 웬트워스와 닮은 점이 많습니다. 소설 속에서 1806년 웬트워스는 산토도밍고 해전에서 공을 세우고, 육지에 머물다 앤을 만나고,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합니다. 프랭크도 1806년 산토도밍고 해전에서 싸웠고, 같은 해 결혼을 했죠. 게다가 그해 제인은 어머니, 언니와 함께 프랭크의 집에 머무른 적이 있으니, 관찰력이 뛰어난 제인에게 오빠 프랭크는 등장인물의 모델이 될 만하지 않았을까요?
한편 오스틴은 해군의 영광과 성공만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남자들을 뒷바라지하며 고생한 여자들을 대변하는 크로프트 제독의 부인은 어떤 장교 못지않게 총명하고 당찬 인물로 그려집니다.
“쓸데없이 고상한 척하는 말이라니! 배를 탔을 때도 영국 땅에 있는 그 어떤 최고의 집에서만큼이나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게 여자들이란다."
또 해군에서 복무하다 세상을 떠난 리처드, 부상을 입고 휴양중인 하빌 대령, 바다에 나간 사이 약혼녀를 잃은 벤윅 대령 등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이 남긴 상흔도 놓치지 않고 담아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