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5년 영국 햄프셔 스티븐턴에서 교구 목사인 아버지 조지 오스틴과 어머니 커샌드라 오스틴의 8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독서에 심취하고 가족 극단을 만들어 아마추어 연극을 공연하는 등 문화적 환경에서 성장한 오스틴은 열두 살 때부터 글쓰기를 시작하여 20대 초반까지 꾸준히 여러 작품을 습작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을 포함한 대표작들의 초고를 대부분 탈고했다. 1809년 고향에서 멀지 않은 초턴에 정착했고 이즈음부터 익명으로 작품들을 정식 출간하기 시작했다. 『이성과 감성』 『오만과 편견』 『맨스필드 파크』 『에마』를 연이어 내놓으며 평론가들에게 "교훈과 즐거움을 동시에 맛보게 해준다"는 호평을 받았고, 기존의 멜로드라마와는 달리 가정을 소재로 한 참신한 사실주의 작품으로 환영받았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오스틴은 주로 중류계급의 일상, 특히 남녀의 결혼을 둘러싼 문제를 극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다루었다. 세밀한 관찰력과 날카로운 시각은 소재와 공간의 협소함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물질지향적인 세태와 허위의식을 성공적으로 풍자해냈다. 1816년 마지막 작품 『설득』을 탈고한 이듬해 마흔두 살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2025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먼슬리 클래식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오스틴 컬트’ ‘오스틴 현상’ 같은 용어를 낳으며 대중적 오마주의 중심에 자리한 작가 제인 오스틴이 “사랑하는 내 아이”라 불렀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 중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대표작. 19세기 영국의 결혼관 및 세태를 풍자와 유머, 아이러니를 통해 날카롭게 그려내고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를 섬세하게 탐구한 소설로, 일 년 남짓한 시간 동안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를 비롯한 여러 쌍의 남녀가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담아냈다. 경제적 자립 수단이 없기에 결혼을 통해서만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던 19세기 여성이 처한 현실 속에서도 가부장적 통념과 속박에 맞서는 주인공 엘리자베스를 통해 선구적인 여성상을 제시한 『오만과 편견』은 시대성과 보편성을 아우른 고전으로 오늘날까지도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제게 제인 오스틴은 고교 시절에 본 이안 감독의 영화 〈센스 앤 센서빌리티〉로 인식하게 된 작가입니다. ‘이성과 감성’이란 제목으로 알려진 제인 오스틴의 데뷔작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에는 거물급 배우라 할 엠마 톰슨과 함께 훗날 〈타이타닉〉의 ‘로즈’로 더욱 유명해진 케이트 윈즐릿이 자매 엘리너와 메리앤으로 등장하죠. 무슨 계기였는지는 까먹었지만 학교에서 교실 TV로 틀어줘서 반 친구들과 함께 아주 재밌게 본 기억이 납니다. 성격이 상반된 자매의 로맨스가 어떻게 되어갈지도 흥미진진했지만, 19세기 초 영국 시골의 아름답고 아련한 풍광, 당대의 우아한 여성 복식도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찾아 읽고, 관련된 영화도 챙겨 보곤 했죠.
이번 먼슬리 클래식 리커버판 작업을 진행하면서 『오만과 편견』을 오랜만에 정독해보니 예전에 읽었을 때와는 또다른 재미가 느껴지더라고요. 처음 읽었을 때는 엘리자베스를 비롯한 다섯 자매가 딸이란 이유로 재산 상속에서 배제되고, 아버지 베넷 씨의 사후에 재산이 친척 콜린스에게 가게 된다는 사실에 부당하단 생각이 앞섰습니다. 그런 이유로 엄마 베넷 부인은 딸들을 부잣집에 시집보내려 지나치게 혈안이 된 모습을 보여주고요. 왜 이런 식으로 재산 상속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는지는 『오만과 편견』 해설에 상세히 나와 있어요. 시대적 배경을 파악하면 얼마간 납득이 가긴 합니다만, 경제적 자립 수단 없이 평생에 걸쳐 아버지, 남편, 아들에게 차례로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당대 여성의 고달픈 현실이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이처럼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였으므로 부당함에 맞서고 자기 의견을 당차게 피력하는 주인공 엘리자베스의 미덕이 더욱 돋보이는 거겠죠.
한편, 이번에 재독하면서는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맏딸 제인과 빙리 등 주요 인물 외에도 다소 비호감이랄까 문제적 인물이랄까 싶은 조연에 더욱 흥미를 느꼈습니다. 부자 사위를 들이려 주책을 부리는 베넷 부인, 큰 재산을 가진 신붓감을 의도적으로 사냥하려 하며 배신을 일삼는 위컴, 군인과의 로맨스를 꿈꾸다 위컴과 도피 행각을 벌이는 철없는 막내 리디아, 권위 앞에서 비굴하리만치 머리를 조아리는 위선적인 콜린스 등…… 각양각색의 인간 군상, 그들의 행동과 말이 생동감 있고 풍자적인 필치로 묘사되어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BBC 드라마의 리디아, 베넷 부인, 위컴, 콜린스
원작에 비교적 충실한 BBC 드라마(1995),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의 영화(2005)를 보시고 각 인물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살펴보셔도 흥미로울 겁니다. 『오만과 편견』에서 영감받은 현대물이라 할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는 드라마에서 다아시 역할로 나온 콜린 퍼스가 ‘마크 다아시’로 등장한다는 점이 이채롭죠. 올해 하반기에는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로 나온다는데 캐스팅 소식이 속속 전해지며 관심을 끌고 있고요. 앞서 거론한 작품들을 감상하고 작가 제인 오스틴의 삶이 궁금해지셨다면 영화 〈비커밍 제인〉을 감상하는 것도 추천해드립니다(저는 개봉 당시에 친구들과 영화관에서 본 추억이 있네요).
이처럼 쉼없이 새롭게 영상화되는 걸 보면 『오만과 편견』은 해마다 새로운 독자를 불러들이는 생명력 강한 불멸의 고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나 드라마로 접하고 정작 원작 소설은 읽지 못한 분도 있을 텐데요, 이번 기회에 『오만과 편견』을 읽어보시고 제인 오스틴 특유의 감각적이고 재치 있는 대화의 맛을 느껴보시는 건 어떨까요?